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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 역사




한국인권문제연구소 (Korean Institute for Human Rights)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역사를 이곳에 정래해 놓을 예정입니다.




1998년 10월 15일



한국인권문제연구소 회원 25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다과를 함께하다. 이 자리에서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 통일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해온 한국인권문제연구소의 노고를 격려하고, 앞으로 국난극복과 제2 건국을 위해 적극 앞장서줄 것을 당부하다. [출처: 김대중 도서관]



가운데 강대인 박사와 김용현 선생


이종인 장로와 임마철 선생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2차 미국 망명시절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섰던 인사들과 함께 자리한 모습.




1985년 귀국을 위해 대사관을 방문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동행하고 있는 이근팔 선생




1983년 2월 15일






1982년 말 미국 워싱턴에 정착한 김대중과 이희호는 교회·대학·인권단체·정계 등을 돌며 줄기차게 한국 민주화 지지를 호소하는 강연을 했다. 사진은 1983년 2월15일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오른쪽)가 상원 의사당에서 주최한 김대중(왼쪽)과 이희호를 위한 환영회로, 뒤쪽에 홍업·홍일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82년 12월 23일

1980년 5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던 김대중씨가 82년 12월23일 서울대병원 구급차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미국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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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이하여 한국인권문제연구소의 복원을 시작하려 합니다. 인권연은 1998년 3월 31일을 기해 잠정적으로 패쇠되었고, 인권연 동지들은 유사한 이름으로 별도의 단체를 만들어 오랜동안 동지애를 지켜왔으나 고 이선주 목사님 등 연로하신 선배들이 한분씩 돌아가시면서 소멸되었습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건강상 마지막 방미가 될 것같다고 말씀하시고, 동지들이 다시한번 나서서 조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에, 구 인권연 동지들이 급히 97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정동영 대선지원단을 꾸리고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패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일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이 사익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국정을 농락하여 두분 모두 교도소에서 여생을 마감해야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이제 초당적 입장에서 조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선민주 후통일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향해 또다시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참여하여 흥사단, 한민통, 인권연으로 이어진 재외동포 민족운동의 정신을 이어 나아가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2018년 8월25일 장현석  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기획간사 (1994 ~ 1998) 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재건 준비위원 자세한 문의는 eonhair@gmail.com 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Korean Institute for Human Rights 사진 왼쪽부터, 장현석,  서홍석 박사님 (80년대 부터 인권연 중앙이사로 활동하신 원로),  김치환 장로님 (90년대 부터 인권연 중앙이사로 활동하신 원로),  신대식 목사님 (한민통 의장을 역임하셨고, 인권연을 이끌어 주신 원로),  고대현 회장님 (현 세계한인민주회의 미주대표를 맡고계신 인권연 원로),  윤득중 선쟁님 (망명초기 D...